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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레터1]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과 정치의 정상화를 위해 헌법 개정을 피할 수 없습니다. 2014-02-17
김태년의 혁신 레터 1.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과 정치의 정상화를 위해  
헌법 개정을 피할 수 없습니다.      


존경하는 선후배 동료 의원님! 
김태년입니다. 

제가 그동안의 대한민국 정치, 국회, 정당의 혁신에 대한 고민을 모아 책 ‘성찰과 혁신’을 펴냈습니다. 오는 26일(수) 출판기념회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책을 쓰면서 줄곧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정치혁신’이 과연 무엇인가였습니다. 혹여, 정치 본연의 기능과 역할을 약화시키는 것을 ‘정치혁신’이라는 말로 포장되어 사용되는 것을 시종 경계했습니다.  

정치의 기능은 강자의 탐욕을 제어하고 국민 편에서 사회적 가치를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데 있습니다. 이러한 정치의 기능이 약화되고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으면 돈과 기득권을 가진 강자들만을 위한 그들만의 세상이 됩니다. 약육강식의 정글과 같은 세상에 국민을 내모는 꼴이 됩니다. 정치혁신의 본질을 결코 정치의 약화에서 찾아서는 안 됩니다. 잘못되고 낡은 기득권 체제를 깨뜨리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정치의 기능을 강화해야 합니다. 정치혁신의 본질도 여기에 있습니다.

“정치쇄신은 정치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현실을 바꾸는 것이다. 즉, 기득권을 과보호하는 공정하지 못한 가치의 배분, 부정과 불의, 부패의 낡은 체제, 밀어붙이기의 독선정치가 바로 정치쇄신의 대상이며 이러한 잘못된 구체제 정치를 깨뜨리는 것이 새정치인 것이다.”
(‘성찰과 혁신’ 본문 中에서)


선후배 동료 의원님!

대한민국 정치가 위기입니다. 대화와 타협의 문화, 통합의 정치가 사라졌고 대통령의 일방적 통치가 그 자리를 대치하고 있습니다. 안하무인 대통령의 불통정치는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계속하고 있고, 집권 여당은 대통령의 독선 정치의 거수기와 조력자 역할에만 충실한 부속품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강력한 행정권력을 바탕으로 한 힘에 의한 지배 앞에 국회는 무기력하고 야당과 반대세력은 철저히 무시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제왕적 대통령의 권위주의 통치체제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치혁신은 이 잘못된 체제를 깨뜨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비정상적인 제왕적 통치질서를 바꾸어 정치를 정상화시키는 것이 정치혁신의 중대한 과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제왕적 대통령의 권위주의 통치체제를 혁신하기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제도를 바꿔야 합니다. 이는 우리나라 정치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헌법의 개정을 수반하는 사안입니다. 물론 제도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권력을 운용하는 집단의 행태와 문화라는 비제도적인 문제로부터 제왕적대통령제의 폐해가 발생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잘못된 정치행태가 반복적으로 일어난다면 이를 근절시킬 수 있는 제도적 대안을 마땅히 마련해야 합니다. 

헌법을 개정하자는 논의와 시도는 언제나 있어왔고 현재도 여전히 여야를 넘어 주요한 의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헌법을 손질해야 한다는 데 많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는 반증입니다. 개헌 논의의 방향도 제왕적 대통령제를 극복하자는 데로 주로 모아져 있습니다. 정치의 비정상화를 낳는 문제에 대해 거의 동일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헌방안도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논의의 출발점은 문제의 본질과 핵심을 정확히 짚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87년 체제로서의 우리나라의 현행 정치체제는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가미한 변형된 대통령제와 5년 단임제의 대통령 임기를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87년 체제로서 지금의 정치체제를 바꿔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저명한 정치학자이자 비교헌법학자인 카를 뢰벤슈타인(Karl Loewenstein)은 ‘미국식 대통령제와 유럽식 의회내각제의 결합은 죽음의 키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리한 제도의 변형과 절충으로 대통령제의 장점과 의원내각제의 장점이 결합되는 것이 아니라 각 제도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장점은 사라지고 오히려 ‘신독재’를 낳는 것을 우려한 것입니다. ‘신독재’는 의회의 기능과 지위가 현저히 약화되고 대통령이 절대 권력화되며 권력에 대한 통제장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상황을 얘기합니다. 우리나라 제왕적 대통령제의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만 같습니다.   

주지하다시피 대통령제의 장점은 삼권분립 주의에 따라 견제와 균형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것이며, 내각제의 장점은 ‘권력의 융화’에 따라 책임정치를 구현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대통령제와 내각제는 분립과 융화라는 전혀 다른 구성 원리를 가지고 있는 상반된 제도입니다. 이를 섣부르게 절충하여 오히려 단점만 부각시킨 것이 한국의 대통령제입니다.

우리의 대통령제는 장점인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되지 않고 대통령과 행정권력이 입법권력 보다 우위에 서 있습니다. 순수 대통령제에서는 의회에만 존재하는 법률안 제출권이 정부에도 있고, 의회의 권한인 예산편성권이 정부에만 있습니다. 사법권력 또한 여전히 행정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 문제가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반면, 의원내각제적 요소는 그야말로 형식화되어 있어서 책임정치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각제처럼 의결제도로서 국무회의를 두고 있으나 사실상 대통령제의 보좌기관과 크게 다르지 않고, 총리 또한 대통령 보좌 기능에 머물러 있습니다. 의원의 국무위원 겸직 허용도 인사의 방편이지 책임정치와는 거리가 멉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정치체제는 ‘대통령제로서의 권력분립의 장점과 가미된 의원내각제로서의 권력 융화의 장점’은 거의 발현되지 못하고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권위적 통치체제가 유지되기에 안성맞춤인 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형적인 정치체제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개헌 논의가 이뤄져야 합니다. 그것이 대통령제를 유지하든, 내각제를 도입하든, 아니면 분권형 대통령제를 채택하든 마찬가지입니다.  

우선적으로 논의될 수 있는 것은 대통령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통령제를 유지하려면, 삼권분립주의를 최우선에 두고 견제와 균형의 장치가 제대로 구현되는 방향에서 손질을 해야 합니다. 행정권과 입법권, 사법권을 엄격히 분리하고 그 독립성을 절대적 원리로 해야 합니다. 정부는 집행권만을 담당하고 입법권한은 국회에만 존재해야 하며, 예산편성권은 물론 감사원을 국회로 이관하여 견제 권한을 강화하는 것도 검토해야 합니다.  대통령제의 유지는 결국 의회기능의 강화를 통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의 실현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대통령 연임제를 도입하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내각제를 도입하는 것도 충분히 검토할 수 있습니다. 내각제는 의회정부제라고도 할 만큼 의회의 구성이 가장 중요하며 다수당 또는 연합을 통해 다수를 차지한 세력이 국정을 책임지고 운영하는 제도입니다. 내각제가 도입되려면 국민의 의사가 국회구성에 올바로 반영되기 위한 선거제도 개편이 필수적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지역 독점에 의한 불균형 정치구조가 민의를 올바로 반영하는 국회구성에 절대적인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나 중대선거구제 도입, 득표율에 비례한 의석배분 장치 마련 등 국회 구성에서 민의의 대표성과 다양성을 제고하기 위한 제도개혁이 우선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선결되지 않는다면 일부 후진국가에서 나타나는 집권당의 장기집권과 압제 위험성이 큽니다. 내각제를 채택한다면 독일에서 시행되고 있는 ‘건설적 불신임제도’의 도입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건설적 불신임제도는 차기 수상이 국회에서 선출되지 않고는 현직 총리를 불신임 할 수 없는 제도입니다. 걸핏하면 대안 없는 불신임으로 정치적 공백과 혼란이 일어나는 것을 피하여 정국을 안정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분권형 대통령제 도입도 논의 대상입니다. 하지만 앞에서 제기한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무리한 결합이 초래할 위험성에 대해 주의해야 합니다. 또한 개헌 논의를 하면서 책임총리제 수준의 권한 이양을 분권형 대통령제라고 얘기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자는 취지로서 당위론적 차원의 분권형 대통령제를 얘기하는 것이라면, 이는 그저 정치적 용어일 따름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 논의는 대통령과 총리의 권한을 분리하는 이원집정부제를 도입할 것인지 여부에 맞춰져야 합니다. 이원집정부제는 권한 분산을 기대할 수 있지만, 외치와 내치, 평상시와 비상시의 경계가 불분명하여 갈등이 상존하며 동거정부의 출현과 정치적 혼란의 위험성이 큰 제도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과 총리의 권한과 책임, 의회와 행정부의 역할에 대한 정교한 설계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갈등해결의 전통과 문화가 형성되지 않고는 도입하기 쉽지 않은 제도입니다.  

결국은 정치체제는 각각이 가지고 있는 제도의 단점을 보완할 것인가의 문제에서 접근하기 보다는 어떤 제도의 장점을 극대화할 것인가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옳은 방안입니다. 삼권분립에 따른 견제와 균형이냐, 권력 융화에 따른 책임정치냐를 우선하여 분명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견제와 균형도 아니고 책임정치도 아니면서 겉으로만 그럴싸한 어쭙잖은 결합은 지양해야 합니다.     


존경하는 선후배 동료 의원님!

헌법 개정 논의, 이제는 피할 수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신년기자회견에서 ‘모든 이슈를 빨아들일 수 있는 블랙혹이 될 수 있다’며 개헌 논의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 수준이 그렇게 낮지 않습니다. 개헌 논의를 충실히 하면서도 다른 국가적 사안은 그것대로 전념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개헌은 정치를 정상화시키는 중대한 과제입니다. 미룰 수도 없고 미뤄서도 안 될 일입니다. 정치혁신과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위한 개헌 논의에 모두의 지혜를 모을 때입니다. 

보잘 것 없는 글을 끝까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2014년 2월 13일 
김태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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